논문, 평설

낙동강문학 개념

서낙동강 2021. 10. 1. 09:06

 

 

 

낙동강 문학의 개념

서태수

 

 

<낙동강 문학의 개념>

 

1. 낙동강(지천 포함)의 지정학적 요소를 제재나 배경으로 한 작품

2. 낙동강의 역사적 요소를 제재로 한 작품

3. 낙동강 주변 민중의 삶을 수용한 작품

4. 낙동강 주변 동식물 등 생명체의 생태를 수용한 작품

5. 낙동강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 변용한 작품

6. 낙동강의 흐름을 확산하여 다른 강, 혹은 사물에 변주한 작품

7. 강의 흐름과 동행하는 만상의 원리를 작가가 개성적으로 변주한 작품

*작가의 개성에 따라 형상화 기법은 다양하겠지만 어떤 경우든 강 혹은 물의 이미지가 작품 속에 유목적적으로 스며 있어야 한다.

 

다음 카페 <낙동강문학 연구회>2014년 탑재한 자료다. 이 글을 카페의 고정란에 탑재하고 이와 연계되는 작품과 작법을 소개해 두었다. 이론적 정립이 아니라 내 30여년 낙동강 연작시조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피력한 것이다. 모두 일곱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는데 지금 살펴보아도 특별히 첨삭할 내용이 없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나 역시 애초에는 낙동강이라는 제재의 개념을 먼저 정립해 놓고 시를 쓰지는 않았다. 더구나 낙동강을 지리적으로 인식하는 소재주의는 과거도 현재도 나의 시적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낙동강 가에서 살아온 연유로 인하여 은연중에 낙동강 서정이 몸에 스며들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살펴보니 대학 시절과 습작 시절의 소설, 자유시도 강의 서정이 많이 함축되어 있었다. 시조로 장르를 바꾼 후 간헐적으로 쓴 작품을 모아보니 수십 편이 되었던 80년대 중반부터 대상을 낙동강으로 한정하기 시작하였다. 오로지 낙동강 연작시조만 천착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낙동강의 외연이 확장되고 내포가 강화되어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1995<강서문학회>의 창립 회원으로 말석에 참여하였으나 최시병 회장의 유고로 해산되어 나의 활동 영역은 자연스럽게 시내 중심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향토에 대한 뿌리 의식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개인적 문학 방향 정립은 낙동강 연작시조 천착으로 굳혔다. 선배문인들의 고언苦言도 있었으나 향토문학 중심 시대의 도래 확신은 변함없었다. 애초부터 로컬리스트를 자청한 나는 막연하게나마 <낙동강 문학의 뿌리가 되는 단체 조직, 낙동강 관련 문학상 제정, 낙동강 관련 향토문학관 건립>의 세 가지를 기획하고 있었다. 기회를 잡아 2004년부터 주도적으로 복원한 <강서문학회>가 자리를 잡고, 2007년 창안을 주도한 <낙동강 문학상>이 본궤도에 오르자 2011년에 만든 이전의 시조 토론 카페를 2014년에는 <낙동강문학 연구회>로 개편하면서 낙동강문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와 연계되는 작품과 작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지금 살펴보면 나의 <낙동강문학 개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낙동강 연작시조집 서문에 포괄적으로 담아놓고 있었다. 1시조집 물길 흘러 아리랑(신원문화사, 1997)의 서시에서는 낙동강의 유구한 흐름과 민중의 삶이 상호 교직되어 탯줄처럼 길게 엮이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

 

<흐르는 > - 낙동강71

 

이 세상 어드메서나

은 늘 시작되고

도도한 물길 속으로 길 또한 쉼없이 흘러들어

한 그루 늙은 당산나무가 말없이 지켜섰는 강마을

 

과 구름이 겹한 재너머 멧새들이

먼 바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떼를 지어 날아가면

새파란 들녘을 가로질러 길은 다시 열리고

 

온갖 들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또 밟혀

꽃잎들 여린 눈물 속에 몇 두름 짚세기 닳았을

황토길 가파른 끝으로 따가운 햇살 비친다

 

강물은 제 깊이만큼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되돌아 옷깃 여미는 젖은 발길, 발길들 따라

한 줄기 가느다란 탯줄로 이어진

끝없이 먼 길이여

 

2시조집 , 물이 되다(2007. 한글문화사)의 서시 , 물이 되다-낙동강236에서는 이제, 몸을 풀어 / 흔적을 지우나니 // (중략) // 마음 속 / 부처를 죽이며 / 뭉개지는 늙은 돌탑으로 존재가 해체되어 본질로 귀향하는 기수역의 서정을 원형적 상징성으로 담고 있다. 이후 제3,4,5집 서문 <시인의 말>에는 나의 낙동강문학 창작 개념이 다소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별이 떨어진 곳에 위인이 태어난다지만

우리 강마을은 사람이 태어나면

물방울 한 알 강물 위에 똑, 떨어진다.

 

그 물방울 굴러 물길 되고,

그 물길들 모여 강이 된다.

물길은 문학의 몫이고 강은 역사의 몫이다.

(하략)

-3시조집 사는 게 시들한 날은 강으로 나가보자(2007. 세종출판사)

 

강가에 처음 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시퍼런 물만 보인다.

 

10년쯤 강가에 살다 보면 / 도도히 흐르는 물길이 보인다.

20년쯤 살면 /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이 보인다.

30년쯤 살면 / 강과 더불어 흐르는 만상萬象이 보인다.

40년쯤 살면 / 강이 되어 흐르는 만상이 보인다.

그리고 하구河口를 지나면서 강이 물이 되는 것을 본다.

 

나는 이 시집에서

강에 빌붙어 살면서 강이 되어 흐르는

사소한 존재들의 생태를 통해

우리네 삶의 옆모습을 변주變奏하고자 한다.

-4시조집 강마을 불청객들(2014. 세종출판사)

 

나에게 낙동강이란 흘러가는 모든 존재들이다.

 

흐르지 않는 것이 있으랴.

꽃잎도 흘러가고

새소리도 흘러가고

우리네 희로애락의 서정도 흘러가고

 

수수만년을 제 자리에 꿋꿋이 버티고 앉았을 것 같은 바위도

모래 되어 흘러간다.

 

존재存在는 강둑을 따라 유한하게 흐르고

만유萬有는 물길이 되어 무한하게 흘러간다.

 

강만 강이 아니라 흐르는 모든 것은 강이다.

 

흐르는 것들의 묵언黙言의 몸짓!

풍랑으로 보든, 시로 읽든

강물은 흐르면서 온몸으로 시를 쓴다.

-5 시조집 강이 쓰는 시(2014. 세종출판사)

 

나의 낙동강 작품 방향의 내포와 외연의 거리는 극에서 극으로 향하고 있다. 낙동강을 소재로서의 강과 그 원형적 상징을 동시에 문학적으로 조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낙동강 작품에는 지정학적인 낙동강의 실체도 있고, 강에 젖어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 역사도 들어간다. 나아가 소재로서의 강과 그 원형적 상징을 동시에 조명시키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강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모두 흐르더라는 사실을 담는다. 흐르는 것은 모두 강이다. 바윗덩어리도 시간이 지나면 풍화가 되고 흘러가서 모래가 된다. 물길 흘러가듯 시간도 세월도 흐르고 삶의 가치도 흐른다는 인식이다. 여기에서 작품 속에 강의 원형적 상징이 형상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낙동강문학은 소재주의에서 출발해서 고도의 상징성을 함축한 서정성에 이르기까지 다층적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 창작에서 제재의 내포가 강화되면 존재의 원형적 이미지와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리적 소재의 시조에서부터 인간과 자연의 삶의 흐름에 이르는 상징성까지, 강의 이미지에 담아내는 다양한 시편들을 창작하고 있다.

문학 창작에서는 소재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창조적 미감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토적 소재주의도 꼭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향토문화의 고유한 브랜드 창출에 문학의 역할이 매우 큰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학 창작에서 작가의 개성적 영역은 무한하다. 따라서 작가, 시대, 장르에 따라 낙동강문학의 개념도 유동적으로 정립될 것이다. 다만 이 모든 작업은 오로지 개별 작가의 몫일 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서 낙동강문학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학문적 정립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