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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 속의 자유 정신

서낙동강 2007. 12. 11. 15:37
 1997. [부산시조]

부산 여류시조문학의

            정형 속의 자유 정신

                                             

   부산 여류시조문학회의 〈먼 산자락 새 솔빛〉(제 10집, 1996.12. 해광출판사)의 작품들을 일별해 보면 두 가지 대립되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시조문학의 특징인 정형 정신을 단아하게 드러낸 작품이고 또 하나는 시조라는 정형 속에서도 시행의 배열과 음수 또는 음보의 파격을 통한 자유정신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연간집에 수록된 14명의 회원 작품 91편을 다음의 기준으로 분류해 보았다.

  1. 단아한 정형 정신의 작품: 음수나 음보의 정격을 유지하고, 시행 배열에서 3~6

     행 등으로 동일형을 지향한 작품이 42편

  2.정형적 자유 정신의 작품: 음수나 음보 또는 시행 배열에서 자유스런 구사를 시

     도한 작품 59편

   (1)시행 배열만을 자유롭게 구사한 작품 39편

   (2)정형 배열이지만 음수가 의도적으로 가감된 작품 2편

   (3)음수 또는 음보와 시행 배열의 파격을 동시에 이룩한 작품 18편


이렇게 분류해 볼 때 자유 정신의 작품이 전체의 65%가 되었다. 14명의 회원 전원이 한편 이상씩은 이러한 시도를 보이고 있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이러한 시도에 직접 접근해 있다.  이는 부산의 또다른 시조 문학지인 「부산시조」,「볍씨」 등에 나타난 남성 시조시인들의 작품이 대부분 정형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비하여 오히려 여류들이 시조 창작에 있어서 자유 정신을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여류 시조시인들이 시조라는 정형성의 한계를 피부로 더 진하게 느끼고 있음이며 아울러 창조적 실험 정신을 강하게 발현하고 있음이다.

  700년 전통의 시조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시인들의 고뇌는 여러 측면이 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과제가 시조문학의 활성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시조 문학의 활성화는 현대라는 시대적 특성과 철저히 맞물려 있다. 다시 말해 단아한 정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조의 특성과, 개성의 자유분방한 표출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점이 과제의 열쇠가 될 것이다. 이 해결의 열쇠가 되는 하나의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시조와 자유시의 변증법적 통합이다. 이 통합을 위해서는 시조의 정형에 대한 의의를 단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심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형 정신의 심층적 의의는 단순히 어느 특정 형식의 고정불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형정신의 본질은 인간 성정의 절제를 통한 통일과 조화와 균형의 미를 추구하는 데 있다. 우리 민족의 경우는 이러한 정형정신의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오래전에 이미 시조를 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형 정신의 의의를 시조 형식이라는 불변의 정형성에서 찾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형식적 고정성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대라는 특수성 위에서 모색해 본다면 이 정형양식이 지닌 그 본질적이고도 심층적 의의에 기초를 둔 창작이 필요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부산의 여류시조시인들은 이런 점에서 강한 의욕을 지닌 시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곳에 차를 두고

   내 몸이 빠져 나올 때


   힘겨운 무릎께

   꺾일 듯 욱신거린다


   저 놈의 바퀴 위에서

   머리를 굴리던 나는


   꿈으로 가득하던 날엔 꿈꾸지 못하던 소유

   지상의 언덕들을 지나 이제 우리 쉴만한가

   미명에 시동이 걸리고

   빠져나가는 저 불빛

                     - 윤원영, 「지하주차장」, 전문 -


   이 작품에서는 첫째수와 둘째수의 시행 배열과 음수 운용이 매우 의도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첫째수는 평범한 시조의 운용이다. 그러나 둘째수에 오면 사뭇 달라진다. 단순히 배열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음수와 시행 배열에 작가의 의도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둘째수의  「가득하던 날엔」, 「언덕들을 지나」에 담겨 있는 작가의 의도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4음절로도 가능한 어구를 두고서도 굳이 기본틀을 파괴하면서 음수의 과잉을 시도한데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내재하고 있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을 경과하면서 지녔던 숱한 꿈들, 그리고 수많은 언덕을 지나온 우리의 역정을 4음절의 고정된 의미 전달만으로는 도저히 부족하다고 인식하여 그 양적 전개를 음수의 과잉으로 표출하여 시각적, 호흡적 처리를 시도한 것으로 본다.이 부분을 4음절어의 정격으로 처리하였다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이렇게 잉여의 시정을 급박한 리듬으로 처리하고서는 다시 첫째수와 동일한 시점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종장에 와서는 첫째수와 마찬가지로 호흡을 한번 끊어주는 배행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오늘, 그는 우울하다(째즈를 믿느냐고?)」 첫째수 중장 제1구에서처럼 「오늘」 다음에  의도적인 휴지를 요구함으로써 음수가 2/6으로 읽히도록 한데서도 엿볼 수 있다. 시는 눈으로 보면서 동시에 입으로 읽히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과 호흡의 의도적인 완급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서 이 작품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다른 여류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네 연록의 씨방이

    다 피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아침과 그 밤까지도


    마침내

    너의 묵상은

    네 고뇌에

    이른다.

                     - 박옥위, 「해바라기(1)」, 전문 -


  이 작품은 시조라는 정형정신에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의 분방한 자유정신을 가미한 작품이다. 초장과 중장의 음수 및 종장의 배행에 많은 파격을 보이고 있다. 특히 초장의 제 2구는 시조라는 정형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부분에 의도적 파격을 보여주고 있다. 초,중장의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물고 하는 기나긴 과정을 기다렸던 상황을 음보면에서 급박하게 처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종장에서는 시조의 정형률에 꼭 맞추되 배행을 짧게 끊어버림으로써 사색의 여백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중장 제2구에서 ‘그’라는 단 한 음절 보태는 것도 심각한 고뇌를 그친 의도성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박옥위 작품의 많은 부분이 이런 유형을 지향하고 있다. 「불타는 그리움이 아니다 / 네 꽃너울은 (해바라기2, 초장)」, 「시퍼런 칼로 베어져 / 뚝뚝 푸른 피 흘려도(부추, 중장)」 「바람에 밀리는 물결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대(거울, 종장)」 등은 모두 음수의 단조로움을 의도적으로 파격시킨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 다음의 작품들도 이 범주에 드는 것들이다.


    꾹꾹 누른 설움이

    열꽃처럼 툭툭 불거져

                  - 이 숙례, 「겨울나무」, 세째수 중장 -


    어떻게 견뎌 내야

    한 점 푸른 잎이 되랴

                  - 전연희, 「어둠 속에서」, 첫째수 초장 -


    넣어 둘 집이 없는

    마음 하나

    배낭에 담아


    지고 뜨는

    몇 개의 언덕을 넘어서

    깨진 무릎

    꽃으로 말린


    비탈길

    늘 어딘가 한 구석

    비에 젖었던 야영

                         - 정수자, 「가을 깊은 날에 1」 -


   [ 지고 뜨는 / 몇 개의 언덕을 넘어서]

   이 얼마나 숨가쁜 발걸음인가. 시의 표현이란 이렇게 때로는 고정의 상황을 뛰어넘어 피부에 닿는 정서를 전달할 때에만이 살아 있을 것이다. 이것을 고지식하게 「지고 뜨는/ 언덕 넘어」로 잣수를 정형화시켰다면 그 호흡은 이미 상실되고 다만 의미만 전달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보법의 시조시인들에게도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의 말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시조가 현대를 살아 있는 문학양식으로서 정착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혹자는 시조 작품의 자유시적인 배행을 두고 불가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지만 시에서의 배행법 특히 정형구조인 시조에서의 배행은 매우 치밀함을 필요로 한다.


     세모시

     하얀 적삼

     나비 나비

     모시나비

                 - 전연희, 「모시나비」, 첫째수 초장 -

  위의 작품을 무신경하게 장별로 배열해 버렸다면 도저히 시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 중에서 특이한 작품의 유형은 단연 정수자의 「사상 공단 가는 길․8․9․10」 3편일 것이다. 이 세 작품은 분명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시조작품은 아니다. 즉 정형시조는 물론이려니와  장시조와도 다른 점이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 시조라는 광의의 테두리 속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 다시말해 시조의 정형정신을 살리되 현대 자유시와의 변증법적 조화를 시도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칼국수

    한 가닥에

    하루를 걸어 놓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른 침을 삼킨다

    날마다

    두꺼워 가는 손바닥을 보며

    내려 앉는 손바닥을 보며

    줄어드는 키를 보며


    삼년 후

    돌아갈 고향

    만리장성 그 하늘을

                - 정수자, 「사상공단 가는 길10」, 전문 -


  제1연 4행까지는 시조의 정형률 그대로이다. 그러나 후반부 4행은 정형률에서 벗어난다. 이는 초,중장이 아니다. 초장이니 중장이니 하는 한계를 깨어버린 작품이다. 제1연의 전반부에 정형적 리듬을 배치하고 후반부에는 자유로운 보법을 보여줌으로써 시조의 정형정신과 자유시의 개방정신을 상충시키고 있다. 그리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는 종장을 그대로 운용함으로써 정형적 자유정신을 한껏 실험해 본 대담한 작품이다. 「사상공단 가는 길․8,․9」도 같은 유의 작품이다. 이 두 작품들은 위에 제시한 작품보다 더 파격적이다. 그만큼 작가의 치열한 의도성이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편의 공통점은 모두 종장의 정형을 살림으로써 시조가 지닌 정형정신을 창출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글은 시조를 아는 사람에게서는 시조의 정형 냄새가 풍길 것이고 시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언지 모르지만 단아한 정형정신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는 정형성만을 금과옥조로 삼는 시조 작품이나 지나친 자유정신으로 해체 지경에까지 이른 자유시 모두에게 극단적 양극화의 변증법적 통합을 제시하는 하나의 새로운 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언급한 작품 외에도 장시조의 창작을 통해서 정제된 시정을 펼치고 있는 제만자는 여전히 시조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박정선의 「사람을 만날수만 있다면」도 시조의 단정한 보법에다 자유스러운 배행을 통한 맑은 시정을 그려내고 있었고, 황다연은 「속죄의 땅」과 「광안리 바다1,2」, 「그리운 길」 등에서 시조가 지닌 시행 배열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시적 내용에 맞딱뜨려지는 다양한 배행을 상당히 치밀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이런 유의 작품은 시조의 정형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성이 조직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결과로 음수나 음보, 시행 배열 또는 의미 구조에서 문제를 드러낸 작품도 많이 있었다. 이는 시조와 자유시의 조화가 단순히 봉합되는 구조가 아니라 음수나 음보, 그리고 의미와 시행 배열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소홀히 한 결과일 것이므로 작가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하면서 정형 속의 자유 정신을 천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형 속의 자유 정신을 토로한 작품 외에 시조문학의 단아한 정형성을 통해 구체적 서정을 질감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는 윤원영의 「부산역 조감도」, 이 말라의 「돌아가는 길」, 정현숙의 「거문도 풍어제」, 황다연의 「묵상의 9월」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여류들의 작품은 포괄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벗어난 작품이 많고 생활 주변의 구체적 사실들을 아름다운 서정으로 노래하고 그 시적 짜임새도 섬세하였다. 이와 같이 시조문학을 지향하는 동일 집단 속에 정형과 아울러 자유정신의 시심을 천착하는 다양성을 〈먼 산자락 새 솔빛〉으로 엮은 부산 여류시조문학회는 미래에 대한 시조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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