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문학의 재발견을 위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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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조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고시조는 어떤 유형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현대적 변용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왜 변격시조를 쓰는가. 이러한 명제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본 시집의 후기를 대신한다.1)
1.현대시조의 존재 의의
[현대]라는 용어의 정의는 600년 고목의 [시조]라는 장르와는 대척의 관계이다. 이것이 시조의 태생적이고도 비극적 한계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이 역설적(逆說的)으로 내재(內在)해 있기도 하다. 시조의 소명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이나, 평시조의 절대적 정형성만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다 같이 시조의 뛰어난 기능성(機能性)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을 시조가 지닌 한계 극복을 논의해 오면서도 그의 새로운 기능성을 정착시키는데 실패했고, 시조의 사형선고를 운위하던 사람들의 자유시도 과거 지식인의 필수 교양물이었던 시(詩)의 절대적 위상에서 축출당하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것은 시조시인은 현대인이 지닌 자유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이고, 자유시인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정형정신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모두 정형시와 자유시의 상호 보완적 상관성을 무시해 버려 운문문학의 쇠퇴를 자초한 셈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조는 음보율을 지닌 3장 구조의 낡은 시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면서 굳이 시조를 써야 하는 데는 현대에 걸맞은 당위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 고유의 600년 이상 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위험한 지론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자칫 박제화(剝製化)된 유물로서 이미 전통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버린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릴 수 있다. 과거의 유산이라고 모두 훌륭한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 양식으로서의 시조가 지닌 현대적 의의는 따로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당연히 시조를 써야 한다는 애국적, 민족적 논리가 아니라 ‘왜 현대에도 시조가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 명제에 대한 대답은 시조의 문화적 폭과 깊이가 현대 사회에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시조시인도 독자와 마찬가지로 공동사회 속에서 같은 고뇌와 인식을 지닌 동시대인이므로 현대를 외면할 수는 없으며, 시조도 사회 문화적 소산이기 때문에 과거의 문화유산인 시조가 현대의 문화 창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존립 자체가 좌우되기 때문이다.2)
시조시인의 소명을 단선적 형식으로만 집착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변의 정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적 전통 계승을 추구하는 작업이야 당연히 소중하지만, 시조가 지니고 있는 ‘정형 속의 자유정신’3)의 계승을 통해 시조의 현대적 변용을 다양하게 추구하는 시조의 외연 확장도 소중하다. 시조는 시조대로 자유시는 자유시대로 특이성이 있기에 거기에 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4)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시조는 물론 문화의 변증법적 발전은 요원하다. 정형시와 자유시의 양극단 사이에는 숱한 층위의 양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조의 정형에 대한 의의를 단선적이 아닌, 심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형 정신의 심층적 의의는 단순히 어느 특정 형식의 고정불변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형정신의 본질은 자칫 일탈하기 쉬운 인간 성정의 절제를 통해서 통일, 조화, 균형의 미를 추구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시조의 가치가 존재의의를 지닌다. 만상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인간 심성의 근원에는 자유정신과 정형정신이 공존한다. 자유시가 잃어버린 정형적 서정을 시조의 리듬을 통해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는 리듬 상실의 시대이다. 속도는 리듬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율격적 보법을 잃어버린 현대의 이동 도구들, 자동차나 비행기나 쾌속정이나 KTX에는 리듬이 없다. 이러한 도구들로 인하여 현대인은 체감적 율동감을 상실해 버렸다. 초기의 이동 도구에는 리듬이 있었다. 말[馬], 자전거, 증기기차, 배[船]등은 3 또는 2박자의 리듬을 지녔지만 이제는 이들 리듬을 구경하기 힘들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의 양식도 리듬을 잃게 되어 생활만 삭막한 것이 아니라 문학마저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리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정형률을 지닌 시조의 소명이다.
시의 형식은 운율이라고 하지만 눈으로 읽는 자유시의 어디에도 운율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내재율(內在律)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억지논리가 될 수도 있다. 리듬은 형식이요 형식은 가시적(可視的) 요소이다. 형식 요소는 내재(內在)할 수 없는데 내재율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논리하면 모든 언어는 음악이요 과학 교과서마저도 내재적 리듬으로 읽는 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모순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시형이 일정한 음보율을 지닌 시조의 몫이다.
흔히들 600년 시조의 부흥을 통해 민족 전통 부활을 운위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학의 본질로 볼 때 이는 자체 모순이다. 문인이 무슨 민족문학 운동가도 아니거니와 문학도 무슨 운동으로 이룩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시조보다 더 소중히 여긴 절대가치들, 일테면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절, 충효(忠孝)와 같은 숱한 가치들도 이미 오래 전에 소멸 또는 변모되었다. 시조의 정체성을 <3장6구 12음보>의 절대적 정형성에 꿰맞추는 경우도 자체모순이다. ‘정체성’이란 용어 자체가 모호한 추상적 개념인데 이런 요소를 3장6구라는 특징적 형식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비약적 오류이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정체성을 ‘흰 옷 입고 초가집 온돌에 거주하다 동그란 무덤으로 가는 민족’으로 정의할 것인가. 굳이 정체성을 운위한다면 시조의 정체성은 3장 6구 12음보라는 형식구조가 아니라 ‘자유정신’과 대응하는 ‘정형정신’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고시조에서 보인 정형정신의 현대적 원용은 단아한 정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조의 특성과, 개성의 자유분방한 표출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점이 과제의 열쇠가 될 것이다. 방종에 가까운 현대의 자유 서정을 시조적 정형정신으로 절제5)하는 그런 작품으로 이 시대를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시조는 다음의 제2장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한시(漢詩)나, 일본의 정형시(短歌, 俳句)와는 달리 음수율을 뛰어넘었다는 점과, 고시조 작품들의 다양한 음보율에서도 이미 정형 속에 자유정신이 내재해 있음이 증명되었다. 다만 그 정신을 현대에 맞게 확장할 뿐이다.
2.고시조의 유형
2-1. 고시조의 형식 재론
시조는 짧은 양식에다 내부 구조상 또 다른 엄격한 요소를 지닌 고도의 세련미를 요구하므로 정서의 자유로운 표현에 극심한 제약을 받는다. 조선시대의 작가들, 특히 상류층의 전문 시조작가들도 당연히 이 점에서 고심했을 것이다.6) 그런데 다행히 시조는 잣수율로 보면 정격시조마저도 상당한 신축성을 지녀 그 창작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겸비하고 있는 자유자재성(自由自在性)7)의 시형이다. 그런데 엄밀히 고찰해 보면 시조 형식에 깃든 이 자재자유성은 음수율만이 아니라 음보율의 자유성도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8) 그래서 고시조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음보의 파격을 자연스럽게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9) 이 점이 시조가 지닌 정형 속의 자유정신이다. 한 음절 또는 한 음보라도 벗어나려는 의도성은 원칙대로 정형을 고수하는 당연함보다는 훨씬 큰 고심의 결과이다. 이런 일탈은 형식에 억압된 강박관념에서 빚어지는 맹목적 탈출이 아니다. 이는 곧 작가의 열린 시정신의 발현으로 물 흐르듯 하는 흥취를 따라 자연스럽게 굽이질 수 있는 멋과 여유의 결과이다. 조선시대 시조 작가들은 주로 고정화된 의식의 흐름과 고정화된 상투어로 점철되어 좁은 시적 공간을 점령10)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들 변격 시조는 스스로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치열한 작가 정신의 소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전하는 고시조 작품 4700여 수11)를 일별해 보기만 해도 시조의 외연은 폭이 매우 넓은 문학양식임일 알 수 있다. 시행과 잣수, 음보는 물론 종장의 잣수까지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를 토대로 고시조의 형식을 살펴보면 다음 3가지 특징을 도출할 수 있다.
1. 초, 중, 종장의 3장 구조이다.
2. 각장은 4음보 이상의 율격이다.
3. 종장 제1,2음보 ‘3․5 구조’는 선택적 기교에서 채택된 음수율이다.
첫째, 시조는 3장 구조이다. 단시조에는 의미의 매듭(semantic phrasing)이 있는 데 이것이 곧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이라 불리운다.12) 장시조도 의미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단시조나 장시조나 의미구조상으로는 동일하다.13) 시조의 구조양식은 3장 형식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14) 실제로 단시조든 장시조든, 고시조의 어느 작품도 이에서 예외는 없다. 만약에 이 3장 구조에서 벗어나면 다른 양식이 된다.
둘째, 단시조는 3장이 각각 4음보씩 모두 12음보가 되므로 이는 시조 음보의 최소단위가 되고, 장시조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음보가 다양하게 증가된다. 단시조에서 가끔 과음보(寡音步)의 형태가 나타나지만 이것 또한 시행(verse)에서 휴지(pause)는 리듬을 원만하게 진행시켜주는 역할을 하므로 문제가 없다.15) 장형화한 것은 한 장이 약150 음보까지도 늘어난다.16)
셋째, 제1,2항이 이미 형성된 절대적 전범이라면 종장 제1,2음보 ‘3․5 구조’는 선택적 기교에서 채택된 음수율이다. 이 음수율은 전체 고시조 작품으로 살펴볼 때 절대다수로 나타난 창작의 개연성으로 파악되는 사안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박을수의 [한국시조대사전]에 수록된 고시조 4736수 중 595수를 제외한 4141수 중에서 종장 파격 작품이 238수로 그 중 제1음보 파격이 124수, 제2음보 파격이 114수이다.17) 종장의 원칙이 절대적으로 규범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의 작가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창작하기에 손쉽고 평이한 음수율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장 구조는 시조를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만이 아니라 시조문학의 대가들인 박인로, 정철의 작품에도 있고, [고산유고]에 있는 윤선도의 전체 작품 75수 중 39수가 그러하다.18)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종장 구조를 3-5로 선택한 것은 초중장이 지닌 단순 반복의 건조함에서 탈피하는 재미와 아울러 4행의 한시구조의 전구(轉句)와 같은 극적 변화를 만끽하기 위한 고급스런 기교적 장치를 선호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풍류객들은 이 종장의 구성법을 애용하면서 한껏 멋을 부렸고 그 결과 시조의 격조를 더 아름답게 격상시켰다. 따라서 고시조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도 시조 종장의 이러한 묘미는 당대에도 충분히 예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종장구조는 귀납적 판단으로도 그 가치에 대한 전범적 결론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고시조의 형식을 귀납적 방법으로 재정의하면 [3장 구조, 각장 4음보 이상, 종장 3-5]의 골격 구조를 지녔던 정형시이다. 이는 기존의 엄격한 단시조 형식의 정의와는 다른 의미이다. 즉 장(章)과 음보(音步)와 종장의 요건을 공유하고 있는 다양한 시형의 창출이 가능하여 시조의 외연이 매우 확대될 수 있음을 상정한 개념이다. 시조가 지닌 이러한 유연성은 현대라는 개념과 대척점에 서서 완강하게 양식적 고정성만을 고수하려는 일부 시조시인이 유념해야 할 자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지나치게 탈양식화해 버린 자유시 작법에서도 원용해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2-2.고시조의 변격 유형
시조 형식의 변형 유형은 초, 중, 종장의 어느 장에서 얼마나 많은 변격이 일어나느냐의 문제이다. 분량면에서의 변격은 기본 4음보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불과 몇 음절만 추가하는 단형구조에서부터 매우 긴 양의 음보를 추가하는 장형구조의 변격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변격시조들을 살펴보면 어떤 유형의 변격이든 작가는 시조 3장의 의미적, 형식적 구분은 명확하게 구조화하고 있어 시조가 지닌 3장 구조로서의 기본 골격을 지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위치에서 어떤 분량의 변형이 일어나든 변격시조는 원칙적으로 <3장 구조-각장 4음보 이상-종장의 정격 구조(3-5-4-3)>를 공유한 점에서 정형시로서의 형식적 특성19)을 지닌 작품이다.
2-2-1.정격음보 범위의 변형 구조
곳보고 / 춤추는 나뷔와 / 나뷔 보고 / 당싯 웃 곳과
져 둘의 랑은 節節이 오건마
엇더타 우리의 랑은 가고 아니 오니(미상, 청구영언)
(/선은 율독 구분을 위한 필자의 삽입, 이하 같음)
초장 제2음보의 6음절 ‘춤추는 나뷔와’는 달리, 같은 6음절이라도 제4음보 ‘당싯 웃 곳과’에서는 ‘당싯’의 유무에 따라 그 맛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춤추는 나뷔와’의 6음절은 4음절로 직조하기에 어려움이 따르기에 단순히 의미 전달을 위해 증가된 음절수일 뿐 이로 인한 의미, 감각적 추가 요소는 별무하다. 그러나 ‘당싯 웃 곳과’에서는 ‘당싯’이라는 2음절을 생략해도 의미 전달은 완전하다. 따라서 이 2음절어의 추가는 감각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계산된 변격 운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거믄고 大絃 올나 한 棵 밧글 디퍼시니
어름의 마킨 믈 여흘에셔 우니
어셔 / 년닙 디 소 / 이 조차 / 마초니(정철, 송강가사)
이 작품 종장 제2음보의 8음절은 넓은 연잎에 무수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음절수 과잉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로서 상당히 치밀한 시적 기교라 할 수 있다.
2-2-2.음보 첨가 구조
어와 져므러간다 宴연息식이 맏당토다
눈 / 쁘린 길 / 블근 곳 / 흣더딘 / 흥치며 / 거러가셔
雪셜月월이 西셔峰봉의 넘도록 松숑窓창을 비겨잇쟈(윤선도, 어부사시사, 제40수)
이 작품은 중장에서 의미 구조상 2음보 많아진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율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장에서는 계절의 풍광만이 아니라 여기에다 아울러 잔치는 끝났으되 넘치는 그 여흥을 주체할 수 없어 ‘흥치며 거러가셔’라는 과음보(過音譜)를 토로하고 있다. 시조의 정격과 변격의 멋과 맛을 충분히 체득하고 실천하는 고산의 치열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단순한 정격음보로 운용하여 4음보로 마무리하였다면 시적 분위기는 사뭇 약화되었을 것이다.
谷口哢 우는 쇼에 낮 야 니러보니
져근 아들 / 글 니르고 / 며늘아기 / 뵈 / 어린 孫子 / 노리 다
마쵸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더라(오경화, 청구영언)
위의 작품은 초장에서 제시한 상황에 이어지는 연속적 정경을 제시하고 있다. 중장에서 식솔들의 뿌듯한 정경을 잉여 음보로 넉넉히 제시함으로써 초장과 종장에서 맛보는 여유와 흥취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 구조는 또한 초종장에 부모를 등장시키고 중장에 아들, 며느리, 손자의 사랑스런 정경을 배치하여 부모가 거느리는 가족 구성원의 구조적 효과도 따뜻하게 드러내었다.
2-2-3.장형 구조
정형에서 약간의 일탈을 시도한 위의 두 작품 유형과는 달리 장형구조는 분량면에서 매우 장형화한 구조도 많이 나타난다. 중장의 길이만 해도 정격 4음보의 약40배에 해당되는 길이인 150음보 이상 장형화된 것도 있다.20)
내 몸에 가진 病이 두가지 아니로다
보아도 못 보 눈 드러도 못 듣난 귀 마타도 못 맛 코 말 못 입이로다
잇다감 腰痛과 腹痛이며 眩氣 口痰염 滯症은 別症인가 노라(김민순, 청구영언)
초장의 제시한 병을 중장과 종장에 걸쳐 과장적으로 나열하고 있어 별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음보의 과잉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많게 표현하기 위한 계획된 의도로 음보의 과잉을 불러들이고 있다.
一身이 사자 니 물 것 계워 못 살니로다
피겨 튼 가랑니 보리알 튼 슈통니 줄인 니 갓 니 잔 벼룩 굴근벼룩 강벼룩 倭벼룩 긔는 놈 는 놈에 琵瑟 빈 삿기 使令 튼 등에어이 갈귀 무아기 셴박희 누른박희 바금이 거저리 부리 족 모긔다리 긔다 모긔 살진 모긔 야윈 모긔 그리마 록이 晝夜로 뷘틈업시 물거니 쏘거니 거니 거니 甚 唐비루 예셔 어려왜라
그 듕에 아 못 견될슨 五六月 伏더위에 쉬린가 노라 (이정보, 해동가요)21)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개 치 얄�오랴
뮈온님 오며 리를 홰홰 치며 락 나리 락 반겨서 내닫고 고온님 오며 뒷발을 바동바동 므르락 나으락 캉캉 즛 요 도리암
쉰밥이 그릇그릇 날진들 너 머길쥴이 이시랴(작자미상, 청구영언)
위의 작품들은 초장에서 제시한 사연의 이유를 구구절절 부연 상술하면서 중장이 길어졌다. 정격 시조의 경우 중장 4음보 16음절의 정형 속에 담을 수 있는 물것들의 한계는 최대 8종류에 불과한데 위의 구조에서는 25종이 등장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합리한 현실을 꼬집어 그 모순과 비리를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항체의식22)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 시조에서는 개의 행동양상을 대조적으로 제시하면서 대상을 향하여 해학적 반어로 대응하고 있는 화자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두편 모두 중장의 파격이 길어졌으나 초종장의 파격이 심하지 않아 시조 3장의 시각적 구조가 잘 살아 있다. 위에 보인 바와 같이 고시조 작가들은 넘치는 흥취를 넘치는 대로 드러낼 줄 안다. 정형시조의 엄격한 율격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지로 통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넘치는 흥취를 읊은 시들이 지나치게 장형화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아무리 넘치는 흥도 절제의 묘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들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서사적 구조는 매우 확장된 장형시조의 유형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조이다. 내용은 등장인물 행동의 서사적 연결 또는 시적 상황의 서사적 연속 등이다.
바독 걸쇠 갓치 얼근놈아 졔발 비 네게
물가의란 오지말라 눈큰 쥰치 헐이 긴 갈치 두룻쳐 메육이 츤츤 감을치 文魚의 아들 落蹄
넙치의 가잠이 *********************************** (이하 약 40여 음보 생략)
암아도 너곳 겻틔 셧시면 곡이 못잡아 大事ㅣ로다(김수장, 해동가요)
위 시조의 중장은 50음보 가량으로 길게 늘이면서 초종장은 정격으로 하여 시조3장의 구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안민영의 [紅塵을 이미 下直고]로 시작되는 장시조의 중장은 약 140여 음보의 길이이다. 장형의 서사, 묘사 구조의 유형은 이 이외에도 김천택, 김수장, 안민영의 작품에서도 매우 흔하게 나타나며, 다른 이의 작품에도 이런 유형이 다수 등장한다. 그러나 정형시인 시조에서는 조각물이나 건축물 같이 그 형식에 눈이 먼저 가는 양식이라는 점에서 산문류와는 다른 점이다.23) 고시조의 작가들도 장형화한 시조는 자칫 3장 구조를 상실하여 시조 3장을 인식하기에 어렵게 된다면 곤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장이 아무리 장형화하여도 초종장은 정격으로 처리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파격을 취하더라도 분명한 의미 구조와 더불어 가급적 음보의 변화를 줄임으로써 시조 3장의 형식구조를 잃지 않게 하여 시조 형식의 논리구조는 삼각형의 원리와 같은 삼장성(三章性)의 원리24)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2-2-4.대화 구조
서사적 시형 속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 형식의 구조도 나타난다.
宅들에 동난지이 사오 져 장야 네 황화 긔 무서시라 웨다 사쟈
外骨 內肉 兩目이 上天 前行 後行 小아리 八足 大아리 二足 淸醬 스슥 동난지 사오
쟝야 하 거복이 웨지말고 게젓이라 렴은(작자미상, 청구영언)
이 작품도 초중장의 변격이 다소 길어지자 종장에서는 정격으로 처리하여 시조 3장 구조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2-2-5.연작 구조
고시조에서도 연시조는 많이 지었으나 어느 한 장을 동일어구로 이룬 연작시조25)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작품은 당대의 작품으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天地 萬物이 엇디야 삼긴게고
시저리 시면 太倉애 祿米을 누키고 머그시랴 시저리 리시면 綠水靑山이 어듸가 업스리오 渭川 漁夫도 낫개 나 니오 莘野 耕叟도 두오 고랑 바티로다 며 嚴子陵도 帝腹애 발 연즈니 그믈기도 �거든 셩싱글 내실러냐
어릴샤 뎌 宰相아 제 지브로 오라 샤 (고응척, <浩浩歌> 3수 중 제2수, 두곡집)
위의 연작시조는 초장이 [天地 萬物이 엇디야 삼긴게고]로 반복되고 중장은 12음보에서 18음보까지 장형화하였고 종장은 4음보로 처리하였다. 제3수 종장 제1,2음보 음수율은 3-5의 정격이다. 이러한 유형의 시조는 현대에도 그리 많지 않은 연작시조로서 이런 점으로 볼 때 고시조 작가의 시작 유형은 실로 다양했다고 할 수 있다.
2-2-6.종장 뒤 첨가구조
바람이 불냐지 나무닙이 흐늘흐늘
비가 오랴지 萬壽山에 구름 닌다
아히야 / 그물 걷어 려 담고 / 닷 감어 / 들이거라 / 갈길 밥버(임중환, 시조연의)
변화무쌍한 바닷가의 날씨가 또 변덕을 부릴 징조가 비친다. 촌각을 다투는 심정은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아히야 그물 걷어 려 담고 닷 감어 들이거라’만으로도 소나기 대비는 끝이 난다. 그런데도 ‘갈길 밥버’라고 재촉을 하고 있다. 시조의 정형률상 첨가되어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요소가 첨가됨으로써 오히려 시적 긴박감은 한층 고조될 수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사족(蛇足)인가. 이 종장을 읽을 때면 소나기 내리려는 상황이 저절로 다급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유형은 ‘져 야 空山에 깁히 든 꿩을 로 뒤져 투겨라 여보게’(작자미상, 지씨본 시조의 종장)에서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고시조에는 다양한 변격의 유형이 창작되었다. 성리학 배경 아래에서 개성을 억제시켜 관습화된 표현으로 시적 의상(poetic image)의 빈곤을 자초26)한 엄격한 규격을 파격함으로써 시인의 개성을 확대시킨 것이 장시조의 존재가치이다. 그리고 아무리 긴 사연일지라도 시조다운 운율과 서정 그리고 집단의식의 표현을 잃지 않는다면 장시조를 시조시 영역에서 이탈이라고 할 수는 없다.27)
고시조를 통해 볼 때 당대 작가들은 엄격한 정형 속에서도 여유로운 파격의 미를 잃지 않고 있었다. 시조의 보법을 존중하면서 파격을 하되 의미 있는 변화를 유도하고 가급적 즉시 정규 보법으로 회귀하면서 결국은 단아한 운율로 회귀하는 맛을 잃지 않은 작품이 다양하게 창작되었다.
3. 현대 시조의 가능한 유형
정격시조는 현대인의 자유서정을 담기에는 매우 한정적인 양식이다. 반면에 현대의 자유시는 서정의 표출양식이 지나치게 방종에 가깝다. 시조의 입장에서 볼 때 위에서 살펴 본 바 정형 속의 자유정신을 고양시킨 고시조 작가들의 치열한 시적 의도를 현대에 원용시키는 것은 지극히 필요한 작업이다. 현대가 지닌 다양한 특성들을 감안해 볼 때 현대의 시조작가는 이보다 더 나아가 현대적 서정에 적합한 새로운 시형 창출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유시인도 시조의 이러한 다양한 보법을 탐색하여 자유시에 운용할 수 있다면 시의 또 다른 경지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문화 양식의 생명성은 긴 시간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탄생-융성-소멸’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경향과는 달리 근대화 과정에서 위기를 맞았던 시조의 부활에는 시대사적 특수상황이 있다. 시조의 부활은 일본을 필두로 한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에 기반한 명분의식, 유구한 문화민족의 자존심, 일부 계층의 복고적 취향, 자유시에 대한 거부감 등이 복합적으로 가세한 사정 속에서 인위적 운동으로 이룩되었다. 그래서 1907년 최남선의 작품 이후 1917년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1924년 조선문단의 추천제, 1931년의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춘문예, 그리고 동시대의 [가투(歌鬪) 놀이] 등 다양한 시조부활운동을 거쳐 기사회생하였다. 그후 불길이 잦아지자 1950년대 후반의 민족문학의 전통 논의와 맞물려 시조부흥 논쟁이 다시 일었다.28)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지난 70여년 동안 몇 번이나 번진 인위적 부흥 운동에도 불구하고 시조는 아직도 부흥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특수성에 입각한 시대적 소명의식의 소산인 일제하 시조부흥운동은 논외로 치더라도, 광복후 6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시조부흥은 교과서 편찬, 언론의 관심, 평론가 양성, 국가적 지원, 천재적 시조시인의 탄생 등의 책임회피적인 막연한 인식에만 머물러 있다. 생명체로서의 문학의 본질적 특성을 외면하고 시조를 불변의 정형 속에 연역법적으로 귀속시키는 오류에 젖어, 시조의 부흥을 노력하면서도 시조가 지닌 위대한 힘, 정형 속의 자유정신을 외면하여 오히려 시조를 위축시키고 있다. 윤선도를 비롯한 선대 문인들의 도발에 가까운 창의적 시정신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스스로는 고정관념에 젖는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다. 신춘문예만 해도 자유시와는 달리 새로운 도전 정신을 우대하는 곳은 없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형식적 변용을 통한 새로운 창작 정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된 예는 거의 없다.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중앙지, 지방지를 통틀어 한결같이 기성의 답습 경연장이었다. 1957년부터 1989년까지 중앙 6개 일간지의 총40회 신춘문예 당선작 중 사설시조 형식을 택한 작품은 단 2회였다.29) 고시조도 사설시조의 비율이 14.3%이고 개화기 시조에서도 이 비율에 버금가는데30) 현대는 오히려 그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은 시조의 정체성 문제 확립이라기보다는 시조단의 경직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조를 살리기 위해 시조의 틀을 깨어야 한다. 시조의 유형이 다양해진다고 정격시조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그것은 옛것을 오늘에 재현하여 성공한 많은 문화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본고 제2장에서 정의한 [3장 구조, 각장 4음보 이상, 종장 3-5 구조]의 귀납적 형식을 지키면서 외연을 더 확대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일부 시조시인들이 이미 실험하고 있는 유형을 포함해서 다음과 같은 7가지 이상의 유형이 창안될 수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새로운 양식의 탄생도 가능할 것이다.
(1)현대시조
가. 정격시조 : ①3장 6구 12음보
나. 변격시조
(가)정격 변형 ②12음보 내의 음수율 변화 - 음보에 몇 음절 추가
③음보 추가 -소위 엇시조 또는 사설시조류의 장시조
(나)음보 변형 ④율문과 산문의 혼합 구조 -4음보 율격에 변화를 준 형태
⑤비정형 율문 또는 산문시 형태31)
(다)3장 변형 ⑥양장시조
⑦종장시조
(2)새로운 양식의 시 : 시조와 자유시의 변증법적 변용 구조
이러한 노력은 당장에는 정격시조와 아울러 외연이 확장된 다양한 유형의 시조를 탄생시켜 시조의 위상을 상향시킬 것이다. 그리고 세대가 거듭되면서 시조의 씨앗으로서 자유시를 아우르는 작품, 즉 시조 같은 자유시, 또는 자유시 같은 시조를 창출할 것이고 드디어는 시조도 자유시도 아닌 새로운 위대한 양식도 변용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새로운 변용의 모태인 시조의 정형은 빛이 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후손들은 향가, 또는 고려가요 이후에 탄생한 시조가 17세기 윤선도의 도약에 이어, 21세기에 그렇게도 방종으로만 치닫던 한 시대의 서정을 부분적으로나마 단아하게 정비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다행히 시조에 깃든 시정신은 잣수율이든 음보율이든 자유자재로운 신축성을 지녀, 시조는 그 창작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겸비하고 있는 시형이다. 이런 열린 시정신을 시대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시조시인의 또 다른 소명이 될 수도 있다.
4. 수록 작품 유형
시대에 걸맞는 열린 시정신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항상 새로운 도전적 창작을 꿈꾸는 예술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제2장 [고시조의 유형]에서 구명한 바와 같이 고시조 작품 자체도 이미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형식과 내용상 많은 변모를 거듭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나의 시조 창작의 화두는 고시조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변용하는가에 있었다.
김해벌 낙동강 언저리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필자의 낙동강 연작시 시작은 유신시절인 1974년 여름 토요일의 귀향길, 구포다리에서 홍수로 굽이지는 시위를 바라보며 착상한 <강>32)에서부터였다. 학창시절에 시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시조를 강의하시던 최동원 교수님과 젊은 문학도 임종찬 선배님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시조는 정격시조의 복원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했다. 졸저 낙동강 연작 제1시집 <물길 흘러 아리랑>33)의 수록작품 93편은 장시조 1편, 종장시조 1편 외에 나머지는 평시조 작품들이었는데, 이 작품에도 제2장의 [2-2-1.정격음보 범위의 변형 구조]와 같이 '3장 12음보' 내에서 약간씩 변형시킨 작품이 많았고 1~2음보를 첨가한 작품도 창작했다. 음보의 규칙적 반복으로 인한 단조로움에서 잠깐씩이나마 벗어나기 위한 장치였다. 내용은 주로 민중이 지닌 삶의 애환을 낙동강 이미지와 결부시킨 객관 서정이 중심이었다.
낙동강 연작 제2시집 <江, 물이 되다>에 실린 시조 작품들의 주류는 [2-2-3.장형 구조]의 형태를 다양하게 접목시키려 노력한 것들이다. 형태를 장형화하되 부분적으로 4음보 율격을 살린 것이 대부분이다.34) 내용은 주로 강의 이미지와 접맥된 사적서정(私的抒情)이다. 다만 <제 4부 황사 이야기>는 시대사적 서정이다. 독재가 무너진 90년대를 넘어 2천년대에도 민주화의 결실이 일부 언론과 단체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상황이 이런 풍자적 사설시조를 탄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제 출판될지 모르지만 낙동강 연작 제3시집(가표제 : 전원생활 이야기)에서는 해학과 풍자의 사설적(辭說的) 내용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 서정을 비교적 긴 정격시조로 창작할 계획이다.
제2시조집의 작품을 두고 ‘이게 무슨 시조냐.’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여기에 수록된 변격작품들은 종장시조 3편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한국시조대사전]35)에 수록된 고시조의 유형을 연구한 [제2장 고시조의 유형]들을 원용해 창작한 작품들이다. 고시조의 변격작품을 통해 그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효과 또한 무엇을 의도했는가를 고증적으로 참고하면서 창작에 임했다. 필자가 연구한 고시조의 유형은 정격시조인 평시조 외에 <제2장 고시조의 유형>에서 보인 바와 같이 <1.정격음보 범위내의 변형 2.음보 첨가 시형 3.장형구조 4.대화구조 5.연작구조 6.종장 뒤 첨가구조>의 7종으로 분류가 가능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형식적 유형들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적 변용을 기하되 많은 작품들에서 4음보 율격을 부분적으로 살리는 변화를 주었다. 시조시인 중의 혹자는 ‘현대적 변용’이라는 말만으로도 거부감을 지니겠지만 어떠한 현대시조 작품도 고시조의 표기 유형에서 변용되지 않은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다. 첫째, 내용면에서 볼 때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답습이나 복원이 아니다. 음악 장르인 [時節歌調], 즉 당시 유행하던 노래 가사였던 [時調]에서 문학인 시(詩)로 진화한 장르이다.36) 그리고 형식면에서는 평시조만 하더라도 그 표기 유형은 조선시대 기사(記事) 형태인 ‘붙여쓰기의 줄글’에서 개화기의 ‘어구별 띄어쓰기의 장별배행’으로 변하고 이어 ‘현대어법에 입각한 띄어쓰기’와 함께 ‘장별 또는 구별배행이나 음보별 다양한 배행’의 구조가 탄생되었다. 예컨대 ‘각 낱말은 띄어쓴다.’ 당연한 것 같은 사실도 개화기에는 어구별 띄어쓰기 한 가지를 가지고도 ‘줄글 쓰기’의 고정관념에 묻힌 자들의 저항을 이해시키는 데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였다.37)
필자의 작품은 시조의 기본 형식인 ‘시각적 3장 구조와 종장 형식’을 준수하는 가운데 기왕의 이러한 배행에서 더욱 자유로운 배행을 가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형 중에서도 [2-2-6.종장 뒤 첨가구조]는 그 시형의 획기성으로 말미암아 감히 현대를 사는 본인도 창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시조작가들은 다양한 정신으로 과감하고 활달하게 창작에 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열린 시정신이 있었기에 시조가 오랫동안 국민문학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시조가 <시절가조>라는 명칭에 걸맞게 다양한 변격으로 시대상을 담아내면서 오랫동안 지식인의 필수 교양물로 호응을 받았던 ‘열린 시정신’은 시조의 미래를 우려하는 시조시인이 진지하게 깨달아야 할 반성의 요소일 것이다. 아울러 현대에 들어와서 정형시를 대신한 자유시가 왜 지식인에게서마저 배격당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자유시인들에게도 시조가 지닌 ‘정형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심성 깊숙한 저변에는 자유정신과 정형정신이 항상 교차하면서 갈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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